성공적인 풍경의 사유화 _ 최흥철
2011-04-28 14:11:10 , Tuesday

성공적인 풍경의 사유화

익명의 일상 풍경을 다루는 이민호가 신작 시리즈를 보여 주는 이번 전시는 풍경 사진의 시점을 제거하고 특정한 풍경의 전형성을 최대한 완성 시키려는 시도가 두드러져 보인다. 이전 “휴대용 풍경” 시리즈에서는 손으로 운반할 수 있는 크기의 열린 여행 가방 속에 실제 자연물인 잔디 떼, 혹은 유사한 식물을 담고, 뚜껑에는 가방이 놓인 장소와 어떠한 맥락도 이어지지 않는 하늘 배경의 풍경 사진을 대비시켜 하나의 오브제로 완성 시켰다. 그 자체로 작가 이민호를 각인시키는 작품의 완결된 형식으로서 관객의 주목을 충분히 끌 수 있었다. 거기에 작가는 일상적인 풍경 같은 소유할 수 없는 것을 가지고자 하는 욕망과, 그것의 작은 실현으로서 자연을 샘플링한다는 독특한 개념을 작업으로 보여 주고 있다. 말 그대로 풍경의 사유화이자 풍경을 정물처럼 박제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시리즈에서는 이전 오브제와 병행하던 작업 방식에 큰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어쩌면 다소 엉뚱한 방향으로의 전환이 될 수도 잇는 모험적인 시도는 전적으로 휴대용 풍경의 개념 확장을 의도하고 있음이 명백하지만, 평면인 사진 매체로의 전이를 동시에 꾀하고 있음도 역시 감지할 수 있다. 오브제화한 풍경 박스를 실내, 이질적인 장소 또는 도시공간에 이동시켜 다시 촬영하여 사진으로 만들던 작업에서 더 나아가 또 다른 구조의 레이어가 덧붙여진 것이 중요하게 짚어져야 한다. 결국 휴대용 풍경의 진화의 방향은 마치 양파 껍질을 역순으로 입히듯이 화면 내의 얼개들이 점점 증식되고 있음을 암시하며 지속적인 변화를 예고한다.

이번 작품들에서도 이민호는 자신의 스타일에 엄격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나이브하기까지 한 형식성을 부여하고 있다. 바로크적 상상력이라고 별도로 명명된 이 작품들은 공통적으로 붉은 새틴의 장막과 가운데를 중심으로 하는 일상적인 풍경이 합성되어 잇는 다중 프레임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마치 장막이 드리워진 스튜디오 또는 극장을 연상하게 한다. 여기서 무대의 배경처럼 풍경 사진이 그야말로 가운데에 끼어져 있다. 사실 각각 따로 촬영된 풍경 사진들은 작가의 삶과 이어진 공간이다. 그리고 그녀의 삶의 가장 중심이 되는 공간은 바로 붉은 무대가 위치한 작가의 스튜디오이다. 몰입을 위해 창조해 놓은 자신의 가장 가까운 곳으로 그녀의 삶과 얽힌 외부의 공간을 초대한다. 그래서 비어 있는 무대에서는 배경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배경이 주인공이 되는 뜻밖의 전환이 펼쳐진다. 그래서 그녀의 풍경은 안으로 갈수록 깊어지는 파사드 같은 깊은 통로의 동굴 속에서 바라보는 바깥의 장면이다.      

17세기 초에서 18세기 후반까지 유행한 바로크 양식은 일그러진 진주를 의미한다. 이 양식은 곡선의 과도한 사용과 장식 과잉의 그로테스크함을 부정적으로 비판하기 위해서 이름 지어졌다. 하지만, 19세기 후반 이후로는 의미가 변하여 호사스러운 절대주의의 엄격한 미적 형식을 추구하는 경향의 객관적인 시대 양식으로 정리된 용어이다. 제목에서 암시하듯이 작가는 이번 전시의 작품들 속에 이러한 바로크적 코드들을 곳곳에 배치하고 잇다. 이 요소들은 대략 기법적인 면과 사진 속의 오브제 사용 등 두 가디 방향으로 정리해 볼 수 있겠다. 우선 디지털 사진 합성 작업의 기본 기법인 잘라 내고 다시 교묘하게 이어 붙이기의 사용에서 그 요소를 발견할 수 있는데, 이 기법의 적용이 논리적 귀결이라는 맥락보다는 화면 구성의 알레고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라는 점에서 매우 바로크적이다. 일상과 자연, 그리고 인공 풍경의 대조와 혼재는 지극히 평범한 풍경을 극적인 숭고한 순간으로 끌어올려 놓는다.
다른 한가지 요소는 마그리트적인 상상력이 엿보이는 대도구와 소도구의 복잡한 구도를 이루는 배치에서 찾아볼 수 있다. 화면의 상당 부분을 가리고 있는 우아한 붉은 베일은 보이지 않는 부분에 대한 호기심을 더욱 증폭시킨다. 거기에 달린 황금술과 매듭, 그리고 금빛 액자의 풍경 사진, 과거 그녀의 휴대용 풍경 가방, 소파와 콘솔 등은 실제 그녀가 스튜디오에서 가운데 자리를 비워 놓은 채로 직접 구도를 연출해서 촬영하였을 것이지만 정작 주인공은 부재한 쓸쓸한 정경이다. 그런 그녀의 사진을 바라보게 되는 위치는 화면의 경계 반대편인 객석이다. 이 극장의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오브제의 반복과 재인용의 사건이 또 다시 사유화된 풍경으로 대치, 즉 합성된다. 이 바로크적으로 과잉 반복되는 풍경은 다시 순환적인 구조를 완성한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작가는 풍경을 정물화처럼 다루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그녀의 사진은 최종 단계인 합성을 거쳐 완성되면서, 사전에 안배된 구도에 의해 오브제화한 풍경으로 얌전하게 재 가공된 것이다. 안정된 구성은 전체적인 화면을 다소 평면적으로 느껴지게도 할 수 있을 것이지만 오히려 회화성을 보다 더 강화시키기 위한 시도로 이해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그녀의 이미지의 오브제화 방식은 매우 정교한 포석을 깔고 일상의 풍경을 포위하여 사로잡는 전략이다. 그러나 상자에 갇힌 풍경의 이면에서는 피치 못할 이주와 이식에 대한 그녀의 상실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러한 고립 감은 그녀가 파리에서 시도했었던 신체의 특정 부위를 확대하되 피 촬영자의 시선이 화면 밖으로 배제된 일련의 초상 작업의 연장선상에 서 있다.  

                                                                                                                                최흥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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