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로_아리아드네의 실 최연하
2015-07-02 20:51:53 , Tuesday

그간 현대(인)의 초상(풍경)을 탐구하며 경계구역 너머로의 새로운 이동을 해 온 이민호에게 해독과 길 찾기가 불가한 미로가 새로운 화두가 되었다. 정주보다 유목의 단막들을 작품의 소재이자 배경으로 이어 온 작가의 작업여정은 이번 전시에서 ‘미로’에 이르게 된다. 작가의 이전 작업들이 존재의 증명과 부재의 풍경을 표상해왔다면, 신작 <그렇게 끝없이, 미로_아리아드네의 실>에서는 ‘그렇게’ 떠도는 운명의 흔적들로 도저하다. 인간 노마드가 남긴, 이제는 폐허가 된 공장의 건축물과, 쓸모를 다한 박물관의 내부, 건설 도중에 폐기 된 리조트와 버려진 수영장, 통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지하도가 날라 갈 듯 푸르스름하게 자취하고 있고, 작가는 그곳에 명주실타래를 뭉치거나 꼰 채로 공간과의 삼투를 시도한다. 익명의 공간에서 구체적인 사물과의 초(비)현실적인 결합을 통해 작가는 무엇을 이야기하려는 것일까. 우연히 봉착한 미로에서 필연의 아리아드네의 실을 따라가면 잠시라도 정주할 수 있는 휴식의 장소-오아시스에 도달할 수 있을까.

열락의 신 디오니소스의 아내이자, 영웅 테세우스에게 미궁을 빠져 나올 수 있도록 실타래를 건네준 여인 아리아드네의 이야기는 오아시스를 희구하는 현대인들에게 눈멈(재현할 수 없음)과 봄(인식)을 동시에 제안한다. 이 둘은 이항적으로 대립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미로에 닿은 자는 분명 길을 잃은 자이고, 그 때 비로소 길 찾기를 위한 아리아드네의 실이 등장할 수도 있다는 역설을 보여준다. 즉 우연인 것 같지만 필연적으로 곳곳을 헤매야만, 우연처럼 아리아드네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연모했던 테세우스와 헤어져 낙소스 섬에서 디오니소스를 만나게 된 것은 아리아드네에게는 우연이었겠지만, 목표가 분명했던 테세우스의 갇힌 영토보다, 가는 곳 마다 축제의 장(場)이 열리고 아름다움을 향유할 줄 알았던 디오니소스와의 만남은 우연을 은폐한 필연이었을 것이다. 노마드의 이야기는 단순한 길트기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헤매면서 모험하고 목적 없이 이동하는 흔적들에 다름 아니다. 이번에 전시 될 작품 타이틀 중, ‘빨간 실(Fil rouge)’에 ‘길잡이’라는 이중의 의미가 있는 것처럼, ‘길을 잃는다’는 것은 ‘길을 찾는다’와 동의어이다. 관성과 중력에서 벗어나 휴대용 박스에 풍경을 담아 끝없이 이동하던 이민호에게 아리아드네는 통일된 구조가 아닌 이질적이고 가변적인 장소에 실타래를 던져준다. 모든 예술가가 불확실성과 재현할 수 없는 두려움에 처하면서 낯선 미궁에 이르러서야 새로운 작품-흔적을 남기듯이. 하지만 오아시스는 잠시다. 풍요로운 영토는 정주하는 이에게는 획일적이고 동일한 아이덴티티를 부여하겠지만, 반쯤 뜬 눈으로 다른 삶과 사유를 더듬는 노마드에게는 곳곳이 미궁일 터.

그러한 의미에서 현대인의 정주지에 출몰하는 더는 유용하지 않은 공간(장소성을 잃어버린)들이 이민호의 작업에서 오아시스처럼 배치된 것은 사뭇 의미심장하다. 이 장소들은 푸코의 ‘헤테로토피아’, 마크 오제의 ‘비-장소’를 연상하게 하는데, 현대의 문명 속에서 분명히 실제 하는 장소로 존재해 왔지만 역사에서 밀려났거나, 버려진 채로 지금은 장소 밖에 존재하는 특이하고 실체도 분명치 않은 공간들이기 때문이다. 또한 고정되지 않고 다양한 형태로 변주될 수 있는 실제 하는 가상의 공간/장소들이기도 하다. 공간의 고유성은 결여되고 실체감도 상실한 가상의 공간, 지금 있지만 아무데도 없는(now here, no where)곳. 여기에 신화의 상징소인 실타래를 엮어 놓음으로써 한 때 분명히 장소로서의 역할을 했으나, 지금은 익명의 공간이 되어버린 현대의 미궁을 가시화하고 있다. 유목하는 여행자, 이민호 앞에 열린 풍경은 ‘그렇게…끝없이…끝없이…’이어지는 공간들일 뿐이다. ‘굴뚝1,2,3’의 쓰레기 소각장에서 무섭고 기이하게 끊임없이 올라오는 연기처럼, 그 연기가 하늘이라는 공간으로 수직상승하다가 옆으로 퍼지고 구름처럼 안개처럼 다양한 형상으로 와해되고 무상하듯이 말이다.

그렇게 끝없이 이어질 수밖에 없는 불가지한 삶의 풍경들, 역사의 의미는 희미해지고, 장소의 기념비적인 특성이 무화되면서 자기 자신을 스쳐 지나가듯 마주하는 ‘비-장소’는 이번 작품의 전경이자 후경이 된다. 뿌리 내릴 수 없는 유목민-작가는 계속되는 뿌리 뽑힘을 운명으로 길트기를 시도하고, ‘아리아드네의 실’을 따라 언제나 출구를 향해 나아가지만, 언제나! 해결이 불가능한 상태에 놓인다. 현대인의 정체성과 익명성을 작업의 아리아드네 실로 삼아온 작가에게 정주와 표류가 ‘봄’과 ‘눈멈’처럼 동체이듯이, 사진적 핍진성과 가상의 여행이 부딪히는 몽환의 여정에 주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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