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도시를 유영하는 휴대용 풍경 : 이민호 개인전 - 김준기
2011-04-23 02:39:08 , Tuesday

이민호는 문학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간결한 문체의 서사를 구사하는 사진 작업을 보여준다. 그의 내러티브는 극적인 반전이 담긴 스펙터클한 거대서사가 아니라 일상 속에서 반복되는 미세한 차이의 연쇄들이다. 이번 전시의 출품작인 <휴대용 풍경> 연작에서 현대도시를 자신의 직관으로 재배치하고 그 속에서 유영하려는 그의 시선은 도시의 공장굴뚝을 포착해서 산업사회의 단면을 드러내며, 어디선가 목격한 것 같은 잔잔한 풍경 속에서 세상의 이치를 발견해 낸다거나, 도드라져 보이는 사물보다는 그 아래 축축한 바닥 같이 후미지고 너저분한 곳에 머물곤 한다. 이렇듯 이민호는 전체를 보여주지 않고 부분만을 보여줌으로써 전체의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이러한 특징은 인체를 다루거나 도시를 다룬 구작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눈 아래 부분만을 클로우즈업한 무표정한 얼굴을 거대한 캔버스에 그려내는 것이 이민호의 회화작업 <익명의 초상> 원래의 아이디어이다. 그는 인간의 표정이나 인상을 가장 민감하게 드러내는 눈을 제외함으로써 낯선 구도의 얼굴을 끌어낼뿐더러 그것을 매우 거대한 크기의 그림으로 재현해냈다. 이것은 매우 특수한 구조의 감성표현 방법이다. 이들 연작은 꽉 다문 입술에 굳은 표정의 얼굴의 일부분을 거대한 화면으로 접했을 때의 생경함을 제공했다. 이 작업의 후기 연작들은 코와 입술만을 부각시켜 흐릿한 표면으로 처리함으로써 익명의 인물을 초상으로 드러내는 데 있어서 한층 더 깊은 맛을 냈다.

얼굴을 생략한 인체나 일부분을 과장한 얼굴을 그리는 회화 작업을 해오던 이민호는 그 문제의식을 사진 작업으로 확장했다. <불확실한 증명사진> 연작은 몸통을 중심으로 눈 아래쪽과 무릎 위쪽만을 담는 인체사진이다. 이 연작은 증명사진의 기본적인 어법을 어기면서 실용적인 목적과는 정반대의 길을 선택한다. 눈을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피사체가 누구인지를 뚜렷하게 드러내지 않는 증명사진이다. 이 사진은 실용적인 목적의 증명사진이 어떤 방식으로 한 인물의 정체를 증명하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나아가 결정적인 단서를 상실한 이미지가 어떻게 가려진 부분을 재구성해서 새로운 상상을 만들어내는지를 드러내기도 한다. 불충분한 단서를 가지고도 피사체의 정체를 분간해내는 데 동참하거나 또는 익명의 현대인의 모습을 매우 덤덤하게 읽어내는 데도 그의 이러한 어법은 매우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그는 사회 시스템 속에서 한 인간의 존재를 증명해내는 증명사진에 관심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불완전한 재현을 감행했다. 상호대면에 의한 소통보다는 익명의 소통에 의해서 더욱 조밀하게 구조화한 네트워크 시대의 현실을 드러내기 위해서 눈 아래 부분을 찍은 인물사진을 제시했다. 인화를 맡겼던 사진을 찾으면서 잘못 찍은 사진임을 암시하는  ‘영수불가(NON FACTURE)’라는 딱지가 붙여진 사실을 발견한 작가는 이 사진들을 통해서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사진적 재현과 그것을 통해서 사회적 존재로서 자리매김하는 소통 시스템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했다.

이민호의 시선은 도시의 풍경을 잡아내는 데 있어서도 일관성을 발휘한다. 그는 인간과 도시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었다. 그것은 온전히 정체를 드러내는 인간이 아니며 정연하게 질서를 갖춘 도시가 아니었다. 도시 프로젝트인 ‘우리는 여기 산다( We live here)’는 프랑스 파리의 보그르넬(Beaugrenelle) 지역의 빌딩과 아파트들을 담고 있다. 쌩시프리앙(Saint-Syprien)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이 전시에서 그는 비대한 도시공간을 통해서 왜소한 인간의 모습을 반증하고자 했다. 작업실 창밖으로 보이는 연기 뿜는 공장굴뚝은 역설적인 의미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는 도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민호는 작가노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사진의 앵글로 나는  또 다른 세계를 본다. 이 세계는 내가 보여주고 싶다고 선택한 곳이며, 그 속에 하나의 도시가 있고 한 지점이 있다, 그 세계는 나와 같은 보통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들은 차갑고 건조한  금속과 유리와 시멘트로 구조된 초현대식 건물들 속에서 살고 있다. 그곳은 현대식 삶의 안락함을 누리고 있지만 이웃들과의 자연스런 접촉에는 어려움이 있어 보인다.  첨단 기술의 도움으로 세계는 많이 가까워졌지만 따뜻한 체온을 나눌 수 있는 소통문화의 세계에서는 멀어져있다. 왜냐하면 이곳의 초현대식 건물에서 느낄 수 있는 보이지 않는 철옹성의  벽이 누구도 감히 넘을 생각을 못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세계는 나에게 가깝기도 하지만 또 낯설고 먼 곳으로 다가온다.” 이러한 인식과 감각은 한국의 일산과 용산 등을 담은 도시풍경 연작에서도 같은 맥락으로 드러난다. 지하철 안에서 만난 사람, 도시공간의 생소한 풍경들을 통해서 그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을 소통을 가로막는 장벽에 둘러싸인 곳으로 포착해내고 있다.

현대인과 현대도시를 담아온 이민호는 이번 전시의 출품작인 <휴대용 풍경> 연작을 통해서 우리의 삶을 직조하는 다양한 시공간을 사진이미지 속에 재배치한다. 그의 작업은 세 단계를 거친다. 우선 도시의 풍경을 비롯해서 자연과 인물의 이미지들을 찍어서 인화한다. 이어서 그는 휴대용 가방의 덮개 부분에 사진 프린트를 넣고 아래쪽에는 잔디를 설치한다. 마지막 단계에서 그는 이 가방을 도시공간이나 실내공간 곳곳에 옮겨놓고 사진을 찍는다. 그것은 사진과 설치를 혼합한 것이며, 사진을 사진 속에 담아내는 이중구조를 취하고 있다. 이야기 속에 이야기를 배치하는 액자소설처럼 사진 속에 사진을 배치하는 이민호의 의도는 시공을 초월하는 도시공간이나 현대사회의 직조방식을 보다 선명하게 드러내는 데 있다. 연작 가운데 상당수가 파리의 작업실 창밖의 공장 굴뚝 풍경을 담고 있다. 이들 파리의 풍경은 다시 도시의 콘크리트 구조물이나 실내 공간, 버려진 땅 등의 낯선 공간과 조우한다. 그것도 파릇파릇하게 자라 오른 잔디와 함께 가방에 담긴 채 말이다. 이렇듯 한 컷의 사진 이미지 안에 이질적인 요소들을 함께 담아내는 것은 자신의 체험이 관통하고 있는 동시대의 모습을 보다 조밀한 언어로 드러내기 위한 전략이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동일율을 반복하고 있는 삶의 체험 같은 것을 이동이나 여행을 상징하는 가방 속에 담고 이것을 다시 액자소설의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민호의 사진이 디지털합성이 아닌 아날로그배치에 의한 이미지 속의 이미지라는 점 또한 언급할만한 요소이다. 그는 최종적인 결과물로 프린트한 사진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 있어서 가방이나 상자에 잔디를 키우고 사진을 붙이는 설치작업을 하고 다시 그것을 현장에 배치한 후에 실사촬영을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얻은 사진은 디지털합성에 의해서도 가능한 작업이다. 그러나 이민호는 찍고, 뽑고, 붙이고, 기르고, 옮기고, 놓고, 다시 찍어서 뽑는 일련의 수행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에서 그는 실재를 담은 사진이미지와 실재의 관계, 사진이미지를 담은 상자와 실재풍경과의 관계, 세 번째 단계를 거쳐서 얻은 사진이미지와 앞의 두 단계에서 사용한 실재의 관계 등에 대해 매우 섬세한 비평적 선택을 반복한다. 이 점은 그가 선택한 조합의 면면을 살펴보면 잘 알 수 있다. 가령, 고철덩어리들을 담은 사진 박스를 꽃병과 시계와 테이블이 있는 풍경 위에 얹어 둔다던지, 재활용 쓰레기와 곱게 수놓은 레이스가 있는 거실, 공장과 침대, 침대와 콘크리트 구조물, 예쁜 거실과 쓸쓸한 거리의 평상 등이 공존하는 이민호의 사진은 이질적인 요소들 사이의 대립쌍을 이룬다. 반면에 임진각 잔디밭에서 찍은 뒷모습과 실재의 잔디밭, 병실침대와 잡초밭, 아파트 숲과 거실 등과 같이 직간접적인 연상작용을 일으키는 것도 있다. 이러한 이항구조의 만남들은 신체를 매개로 한 수행과정을 통해서 예술적 직관을 드러내려는 이민호의 의도를 해독하는 단초이다.

구작과 신작을 통해서 드러나는 독특한 시선들, 그러니까 생략과 과정에 기초한 증명사진, 도시의 부분이나 구석을 담아내는 독특한 시선, 액자 속에 사진을 담아서 사진 찍기 등과 같은 요소들은 이민호 사진의 주요한 변별점이다. 특히 그의 신작들은 스트레이트 다큐멘터리 사진이면서 동시에 설치나 퍼포먼스의 수행성을 가미한 사진이다. 그가 회화와 사진, 설치 등을 넘나들고 있는 것은 매체 중심의 사고가 아닌 주제나 표현 중심의 사고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유동성은 그가 활동하고 있는 장이 시각언어 실험을 주요한 원천으로 꼽는 예술의 장으로 인해 그 정당성을 획득한다. 그는 증명사진의 어법을 차용하되 그것을 인간의 정체를 완전하게 증명할 수 없는 사진으로 만들어낸다. 도시의 풍경을 담아내되 도시의 지형을 읽어내는 것이 아니라 꿈틀거리며 작동하는 프로그램의 부산물인 연기를 잡아낸다. 말하자면 그가 포착하는 인물과 도시는 정직한 기록을 통해 실재를 표상하기보다는 부적절한 표현을 빌어서 실재의 이미지를 재구성한다. 이민호의 작업이 예술적 언어로서 살아있는 것은 이처럼 실용적인 기록의 맥락보다는 비실용적인 발언의 맥락에 무게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점 때문에 우리는 이민호의 사진을 보다 섬세한 분석과 해석의 관점에서 꼼꼼하게 살펴보곤 한다. 이민호 사진의 여러 요소들이 서로 어떤 연관을 가지며 새로운 이야기를 구성하는지를 파악하는 것은 작가나 비평가뿐만 아니라 각자의 체험이나 이해의 폭을 가진 수많은 독자들에게 더 넓게 열려있다. 이민호 사진의 진정한 매력은 이렇듯 생활정서에 근거를 둔 독자 다수의 공감을 얻어낼 수 있다는 데 있다.
김준기 (미술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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